우리 장류의 기원은 콩의 원산지인 한반도에서 농경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는 고구려 사람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했으며 고구려 안악고분 벽화에서 발효식품을 저장한 듯한 독이 보였다. 조선 명종조에 발간된 "구황촬요"의 내용으로 보아 세종대왕 재위 전후에 이미 장류의 가공법이 발달된 듯 하며 효종조에 이르러서는 장 만드는 것이 연례행사였고 즙장,포장 등의 새로운 장 만드는 법이 보편화 되었다. 조선중엽 홍만선의 산림경제 등에는 45종에 달하는 장류제조법이 분류,정리되어 있는데 현재 각 가정에서 만들고 있는 재래식 메주제조방법은 이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콩은 식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우리 민족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쌀 보리와 함께
식량안보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기초식량 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자급률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우리콩이 수입콩보다 품질면에서는 월등하지만 가격 경쟁면에서는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메주콩은 삶아서 잘 으깨지고 진기가 있어야 좋은데 이러한
조건을 고루 갖춘 것이 우리콩이다. 간장과 된장, 청국장, 밥밑콩과 콩자반,두유와 콩나
물등 모든 콩음식은 우리콩으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콩의 경우 경쟁력에 한계가 있는 작목인 만큼 더욱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콩으로 담근 간장­된장 보급사업은 농촌여성일감갖기사업지역 중 이미 장류사업에 착수했거나 소규모로 맛좋은 간장 된장을 담그고 있는 지역 가운데 생활개선 회원들의 협동이 남다르고 수도권과의 교통이 원활한 13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공동 장담그기는 장을 담글 장소가 마땅치 않은 도시주부를 위해 메주빚기부터 장담그기,장뜨기까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사업은 우리 음식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우리농산물의 애용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안전하고 맛좋은 우리 고유의 전통장류를 도시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물론 도­농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우리나라 장류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역사적 기록으로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약 1,200년전에 유사한 장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두류의 등장을 참조한다면 장류의 기원도 1,200년전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 초기인 약 2,000년전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장류제조법에 대한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추측건대 간장, 된장이 따로 따로 만들어졌고 간장의 경우는 진감장(陣甘醬)위주의 질적한 간장,된장이 혼합된 형태의 장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명종조에 이르러 발간된 구황찰요(球荒撮要)의 내용으로 보아서 세종대왕 전후에 이미 만드는 기술이 다양하게 발달된 듯하며 콩 위주 아닌 콩과 진맥(眞麥)을 원료로 한 메주 따위로
만들어진 된장류들이 등장하고 취청장법(取淸醬法)의 기술발달로 된장,간장류가 따로따로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장 만드는 기술은 계속 발전하여 효종조에 이르러서는 추측건대 장 만드는 것이 연례행사였고 즙장(汁醬), 포장(泡醬)등의 새로운 장 만드는 법이 보편화 되었으며, 조선중엽에 들어서서 산림경제(山林經濟,1715년)등에는 45종에 달하는 장류제조법이 분류 정리되어 있는데 현재 농촌이나 도시의 가정에서 만들고 있는 재래식 메주 제조방법은 이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장류는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그 제법이 변화 발전되었으며 일반가정에 와서는 단순화되면서 오늘날에는 된장, 간장 등이 주가 되고 그외의 장류는 식도락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재래 장류는 1900년 이후 우리나라의 자연과학 연구 부진과 1910∼1945년 동안의 일본식 장류공업의 침입으로 근대화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으며 6.25동란을 거쳐오면서 왜식 장류 공장의 재 가동으로 일본식 간장, 된장이 크게 보급되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한 한국형의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하였다.